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1974) - 시간 통계 기록
2024-05-20 Bibliography bib timelog timetacking c325- #류비셰프 #ADHD #루만 #이맥스 합친 모델 이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Aleksandr Aleksandro Lyubishev)
1890 - 1972
비에트 연방의 소도시에서 일생을 살았던 한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Lyubishev·1890~1972). 그가 8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학술서적 70여권과 모두 1만2500여장(단행본 100권 분량)의 연구논문, 방대한 학술 자료들이었다. 곤충분류학·과학사·농학·유전자·식물학·철학·진화론에 무신론까지, 속속 밝혀지는 그 독창적 이론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Danil Alexandrovich Granil
1919년 1월 1일 러시아 사라토프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기술학교를 졸업한 뒤 에너지 연구소에서 선임기술자로 일했다. 1949년 단편소설 《두 번째 대안》을 발표하며 글을 쓰기 시작, 이후 소설 창작 및 러시아 과학자들에 대한 전기를 집필했다. 이 전기들로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문학상을 수상했다. 구소련 정부로부터 노동영웅 칭호를 받고, 붉은별 훈장 및 붉은깃발 훈장을 수상한 그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에도 왕성하게 글을 쓰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17년 98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세계 각국을 돌며 세미나와 강연을 하는 등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더욱 빛나는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개정판 소개
시간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여기, 무자비한 시간을 온순하게 길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 한 남자가 있다.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과 독특한 관계를 맺으며 학문 연구와 도덕적 자기 삶의 완성에 몰두했던 한 과학자의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조명한 책이다. 1972년 8월 31일, 구소련의 곤충분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 Aleksandr Aleksandrovich Lyubishev가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평범하고 소탈한 연구자로 살다 간 그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은 70여 권의 학술서적과 총 1만 2,500여 장(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연구논문, 그보다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 및 꼼꼼하게 제본한 수천 권의 소책자들이었다. 생전에 류비셰프와 교류를 가졌던 국내외 지식인들은 그가 남긴 엄청난 양의 원고와 속속 드러나는 학문적 성취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류비셰프 생존 당시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교류를 지속했던 전기작가 다닐 그라닌Daniil Alexandrovich Grankn은 류비셰프의 비밀스럽고 위대한 삶을 추적하기로 했다. 말년에 류비셰프가 체류했던 울리야노프스크를 방문해 그가 남긴 방대한 원고들을 여러 날에 걸쳐 검토하던 중 매우 흥미롭고도 소중한 단서를 발견했다. 유고에서 나온 ‘시간통계’ 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언뜻 무미건조한 일기장처럼 보였던 이 노트를 꼼꼼히 분석하던 그라닌은 베일에 싸인 류비셰프의 인생관과 학문관, ‘괴력’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성취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찾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류비셰프의 ‘시간’에 있었다. 스물여섯 살부터 시간통계 노트를 작성해온 그는 지금껏 그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도처에 깔린 시간을 ‘채굴’해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 속에서 자기 삶의 완성으로 향하는 위업을 달성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치밀한 취재와 저자 그라닌의 풍성한 사유, 빼어난 문장력이 잘 어우러진 이 책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는 1974년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유럽과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2004년 초판 출간 당시 저자로부터 이 책의 한국어 판권을 영구 양도받은 황소자리는 책 속 주인공 류비셰프와 2019년 98세를 일기로 작고한 저자 그라닌의 숭고한 생애를 기리면서 달라진 시대에 맞게 책에 새 옷을 입혀 개정판으로 출간했다.
1장 글을 시작하면서 가지는 고민
도대체 무슨 사람이었는가? 정리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정리하려 각자 아는 바를 털어 놓는다. 저자는 고민이 많다.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2장 그들이 류비셰프를 숭배했던 이유
왜 류비님을 숭배했는가? 그의 매력은? 우선 비정통적 시각이 관심을 끌었다.
딜레탕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온갖 것에 관심을 가진 딜레탕트다. 딜레탕트의 어원은 즐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딜레토 diletto’이다. 다시 말해 딜레탕트는 연구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 2장 29페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그는 숭고한 목적을 가졌던 듯, 더 나아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았던 것 같다.
3장 류비셰프가 남긴 방대한 자료들
학문을 넓고 깊게 연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우선, 강한 인내심과 끈기를 지녔다. 그 방법으로
엄청난 생산성과 도덕성은 생활 방법 때문이었다. 도덕성? 스스로 도덕성의 선을 분명히 그어놓고 살았다.
4장 기이하고 흥미로운 일기장에 대해
그의 저작문서들은 서신, 일상 업무 문서, 다양한 이론을 요약 정리한 글, 일기, 논문, 원고, 회고문, 수첩, 메모, 학술 보고서, 사진, 독서 감상문 등 수백 권 분량.
편지나 원고는 일일이 베껴 써 두었다가 제본했다.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왜?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보낸 편지함이 있지만 그 당시는 손 편지 아닌가.
26세였던 1916년부터 다 기록되어 있다. 한 시간 단위로. 누구 보다 쉽게 부활 시킬 수 있는 사람 같다.
보통 일기와 다르게 한 일을 간단하게 나열하고 시간과 분을 계산한 뒤 옆에 알수 없는 숫자를 적어 놓음.
류비셰프의 일기는 한 일과 시간을 나열하는 목록 형태였다.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 20분 (1.0). • 추가 업무: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0.5). • 사교 업무: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 휴식: 이고르에게 편지 - 10분. •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 지(誌)3 - 10분. •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분.
기본 업무 - 6시간 20분.
1964년 4월 8일, 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 어제 그렸던 곤충의 정체를 완전히 밝혀냄 - 2시간 20분. • 이 곤충에 대한 논문 집필 시작 - 1시간 5분 (1.0). • 추가 업무: 다비도바야와 블랴헤르에게 편지, 여섯 쪽. 3시간 20분 (0.5). • 이동 - 0.5. • 휴식: 면도,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 지(誌) - 15분. 이즈베스티야 지(誌) - 10분. • 문학신문 - 20분. 톨스토이의 ‘흡혈귀’, 66쪽 - 1시간 30분. •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황제의 신부’ 감상.
기본 업무 - 6시간 45분.
건조한 나열.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문체는 전보와 같았다.
- 저녁때 슈스토프 3형제가 옴.
- 하루 종일 집에 있었음. 병치레 후라 기력이 없음.
- 두 차례 비가 내려 수영할 수 없었음.
동정심이 많고 선뜻 남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성품과 달리 그의 일기는 회계 장부라도 되는 듯 한결 같이 사무적이고 무감각하였다. 마치 어떤 사건도 자신이 확립한 일상의 흐름, 그리고 업무의 진행을 깨뜨릴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전쟁에서 아들 둘이 전사했다는 내용도 예외 일 수 없었다.
슈스토프 3형제가 왔다는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보통 일기라도 무의식 수준에서 독자를 기대하고 쓰는 법인데 말이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씌여진 것일까?
류비셰프는 이러한 기록들을 일기라고 보지 않았다. 그저 ‘시간 통계’ 기록으로 바라보았다. 매월, 매년 결산표가 만들어졌다.
저녁이면 잠자기 전에 자리에 앉아 무슨 일에 얼마 만큼 시간을 썼는지 계산한다. 기본 업무에 소모한 시간의 합계를 낸다. 무엇이 기본 업무 인가? 0.5 1.0은 무슨 의미 인가?
이러한 시간 측정 기록을 연구하는 게 가치가 있는가? 라는 자문이 들었다.
5장 시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세네카의 말 : 로마시대 스토아주의 철학자
다시 돌아와서, 기록 합니다.
- 1937년이 되서야 제대로 된 체계 완성
-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됨 : 생물학적 시계를 느낌으로 인지
- 1916년부터 1972년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그날까지 56년 동안 사용한 시간 기록
그럴 때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방법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이제 이 방법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네.” 왜 이런 길을 선택한 것일까? 무엇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을까? - 5장 시간과 우리의 관계
6장 그의 젊은 시절
-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스스로 계획했다. 죽는 날까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미리 정해 놓은 셈이다.
7장 시간통계 방법을 개발하다
8장 그를 닮을 수 있을까
9장 그는 현대 과학자의 이상적 모델인가
이론분류학과 자연철학
- 개인적인 일 : 자식의 죽음 등.. => 모두 ‘집안일’ 이라는 분류 속에 넣었다.
10장 그의 유전적 특징에 대해
개인적으로 류비셰프를 알기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
자유로운 사고 낙천적인 사람
볼테르 Voltaire (1694-1778) : 프랑스 계몽사상가
아버지 : 언제나 날 다 큰 어른처럼 대접하며 의견을 나누었지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호기심이 넘치셨어 광대한 지식의 세계에 무한한 흥미 박애주의 : 류비셰프란 성은 ‘사랑하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동사와 어근이 같다.
학자라면 초라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 이유는 첫째, 의복을 진정한 기쁨으로 삼는 사람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고 둘째, 초라하게 입으면 활동하기가 더 편하며 셋째, 의식적인 차원에서나마 ‘고행’을 실천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네.
문학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필요한 지식이었으며,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좋아하는 문장을 옮겨 쓴다는 즐거움에 빠져 정신없이 몰두하게… 과거의 지식인들은 바로 그러했다. 그에게 과학과 철학이 하나였다.
-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 왜 칸트를?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힘
…응용곤충학과 함께 앞으로는 곤충분류학과 일반 생물학도 공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많지 않았다. 상점을 다니며 장을 보고 등잔용 석유며 이런 저런 것을 사기 위해줄 서는 데 오랜 시 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아내도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집안일을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수학 공부는 꽤 많이 했다. 전차나 기차를 타고 오갈 때, 심지어는 회의 시간에도 수학 문제를 푼 덕분이다. 처음에는 주위에 서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고 해서 회의에 건성으로 참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자 나중에는 그러려니 넘어가게 되었다. 기차간에서 나는 철학 책, 특히 칸트의 비판철학을 많이 읽었다. 나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을 다룬 100쪽 가량의 꽤 두꺼운 논문을 썼다. 하지만 이 원고는 키에프에서 분실되었다.
10장 114페이지
그의 삶 또한 다른 모든 사람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다. 그 와중에 칸트 Immanuel Kant(1724~1804)를 공부할 시간을 냈다는 점도 놀라운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되씹어 자기 것으로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 순수 이성 비판
- 창조적 허무주의자
- 어떠한 권위 인정의 원칙도 신념으로 삼지 않는 사람
자연의 본질, 진화의 원칙, 인생의 합목적성 등 질문
11장 학자들의 특징에 대해
멘델레예프 Dmitri Mendeleev (1834-1907) : 주기율표 - 분류 체계 원칙
레닌그라드 대학 멘델레예프 생가 - 시간을 초월한 곳 - 서랍장 속 책 목록 1만 6천여권에 해당하는 서적을 직접 분류 정리 - 기사 논문도 원칙과 방법에 따라 분류 보관 - 수천 장의 목록 카드 작성 - 형형색색 펜으로 밑줄 - 엄청 수고스러운 일임에도 왜? => 필요에 의해서 한 일.
석판 인쇄물, 그림 등 굳이 할 필요 없어 보이는 목록도 있음 - 여기도 분류 정리함 여행 사진, 초청장, 오찬 메뉴, 엽서, 일기장, 가계부 등
나는 그(멘델레예프)의 노력과 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류비셰프의 글이 떠올랐다.
… 나는 고골리의 소설 주인공인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문서 정서를 매우 좋아했는데 나도 학문 연구 도중에 틈틈이 알게 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베껴 쓰는 일을 좋아한다. …
체계화 작업에 대한 애정 -> 다른 열정으로 승화 -> 즉, 서적 목록 가계부 등을 분류 체계화 하는 멘델레예프의 습관은 약점이 아님 -> 일반 사람들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베끼고 정리 기록하는 일은 => 하나의 창조적 활동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 - 각 대상 간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찾고 이어주는 것 - 그 안에 규칙에 맞게 분류하는 것 -> 모든 분야로 확장 왜? 어디에나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12장 류비셰프가 치렀던 대가
13장 류비셰프의 마음속 갈등들
- 류비셰프와 친한 사람들은 그의 이런 특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류비셰프의 오랜 친구인 파벨 스베틀로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류비셰프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류비셰프가 학문을 연구하고 일을 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류비셰프는 학문을 연구해야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1분 1초까지도 철저히 계산하여 최대한 시간을 아꼈습니다.” 결국 류비셰프는 자신에게 ‘주어진’시간을 계산한 셈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준 것은 대체 누구인가? 이 문제에 답하자면 그의 삶의 철학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삶의 목표와 의의, 인생관에 대해서 말이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옆길로 새는 경우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는 길은 종잡을 수 없었다. 옆길로 새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다른 일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떤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았기 때문에 산만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끝을 본 일들이 그의 주된 연구 방향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53년에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생물학계를 지배하는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1898~1976, 러시아 생물학자·농학자.─편집자주)의 이론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쪽에 불과하던 짧은 글을 결국에는 700쪽이나 되는 엄청난 논문으로 발전시켰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독특한 관점
- 하지만 실제로 역사가들이 류비셰프에게 주목했던 이유는 그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나름의 독특한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라큐스에 대한 논문에서 류비셰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도대체 왜
- 도대체 어떤 책을 읽었기에 세계사에서 아테네가 담당했던 역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게 되었단 말인가?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생물학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가 얼마나 박식하였는가가 아니다. 다만 생물학자인 그가 도대체 왜 세계사에서 아테네가 담당한 역할에 대해 고심하고 걱정해야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도대체 왜2
- 공포정치로 유명한 러시아 황제.─역주)에 대한 글은 왜 썼던 것일까? 이유를 대라면 못 댈 것도 없다. 그냥 류비셰프가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된다. 그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관여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전공 학문과는 무관한 논쟁에 휘말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윤리학에서 그의 가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거기에도 전문가들이 넘쳐나는데 말이다. 50쪽이나 되는 〈로이드-조지 회상록을 평함〉을 쓸 필요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정말 주제 넘는 행동이지 않은가! 이런 것은 시간이 넘쳐나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시간통계는 왜 하는 거야!
- 시간통계 방법은 즉흥적인 연주에 맞춰 움직이는 하나의 악기로 전락해버릴 따름이었다. 그토록 철저히 계산, 분석하였던 시간을 도대체 왜 엉뚱한 곳에 다 써버린단 말인가? 그의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그를 점점 더 자주 책망하였다. 그가 생물학 전반에 대한 대작을 쓰기 시작할 때에도 과연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류비셰프는 이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기도 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평소 존경했던 위인들
- 류비셰프가 생전에 좋아했던 사람들 중에는 아인슈타인, 케플러 Johannes Kepler(1571
1630),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 등이 있다. 모두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좋아한 이유는 권위에 의존하는 모든 교의를 단호히 부정하고 다양한 현상에 수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류비셰프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종교는 명상이 아닌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한눈 파는 자
- 이렇듯 류비셰프는 항상 이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지만 정작 그의 삶이 이성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시간통계 방법이라는 자기 관리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류비셰프가 때로 엉뚱한 일에 시간을 마구 낭비하듯 써버리는 일을 막지 못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그래도 재미있잖아
- 류비셰프가 본업에 집중하지 않고 한눈을 판다고 질책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정작 그가 새로운 주제에 대해 논문을 쓰면 재미있게 읽곤 하였다. 내게도 그런 글들, 그가 한눈을 팔았던 흔적들이 더욱 흥미롭다. 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움을 주기 때문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그는 실패자인가
- 그는 실패자였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 학자들, 탁월한 업적으로 유명해진 신진 연구자들이 그에게 열광하게 된 까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연장마다 청중들이 존경 어린 얼굴로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를 불행한 사람이라 볼 수 있을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그의 생활 원칙
- 시간통계 방법 외에도 류비셰프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활 원칙을 지켰다.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2.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 류비셰프는 천재가 아니었다. 천재란 선구자들이 쌓아왔던 노력에 종지부를 찍는 존재이다. 나는 류비셰프가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흥미를 느낀다. 천재는 분석될 수 없고 따라서 연구해보았자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천재는 그저 바라보고 감탄하면 되는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류비셰프에게는 스스로 성공적으로 실천해낸 그 어떤 삶의 비결이 있다. 비록 그 자신은 무슨 특별한 비결이나 기적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말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편지에 논문을 써서 보내는 자
- 류비셰프가 보낸 편지의 수신인은 학교, 연구소, 아카데미 회원, 신문 기자, 엔지니어, 천문학자 등 다양했다. 편지 중 일부는 학술논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또 파벨 스베틀로프나 이고르 탐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과 교환했던 편지는 그대로 출판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진지한 학문적 대화와 논쟁의 연속이다.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류비셰프가 교환했던 학문적 서신만 모은다 해도 현대의 자연 연구, 철학, 역사, 법학, 연구방법론, 윤리학 등 각종 문제가 망라된 두꺼운 백과사전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아낌없이 퍼주는 자
- 하지만 낭패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그 엄청난 능력을 어떻게 그토록 쉽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까! 그것도 전체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개개인에게 말이다. 그는 자기 생각과 사상, 오랫동안 축적한 관찰 결과 등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마치 업무상의 의무라도 다하듯 꼼꼼하고 신중하게 답장을 썼던 것이다. 결국 편지 쓰기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할당되어야 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뭐, 기분 전환으로 역사에 관한 논문을 쓴다면 또 모른다. 어떻든 논문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사적인 편지에 불과하며 수신인 혼자만을 위해 씌어지지 않는가. 이는 힘의 분산이며 모순되는 일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에서
14장 지독히 운 없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15장 자기인식에 이르는 길
- 편지 쓰는데 시간을 많이 썼지만 그걸 잘 정리해 둔 데다가 시간 통계 방법으로 기록해두었기에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자료들을 요긴하게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참고로, 편지 한통 전체가 논문에 인용 된 적도 있다.
- 시간통계 덕분에 - 평온한 삶 - 규칙적인 삶 - 건강한 삶 - 시간 인식은 그를 분주하게 만들기에 불평 불만 할 시간이 없었다 -> 점차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터득 - 타인의 잘못도 쉽게 용서 규칙 질서에도 관용 => 덕분에 늘 편안한 마음 유지
- 최소한의 것으로도 충분했다. 책을 놓고 앉아 연구할 수만 있으면 충분 - 고요함의 지혜로다!
- 주변 사람과 가족들은 불편했다. 평범한 이들은 이러한 소박한 삶은 만족할 수 없기에
-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여겼다. 본인도 부정하지 않았다. 이단자의 삶을 받아들임.
- “금방 모두가 내게 동의해주면 왠지 내 의견이 틀린 것 처럼 느껴진다” - 오스카 와일드
- 그의 시간통계 방법은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 그는 십자가를 붙잡듯 시간통계 방법에 매달렸다. -> 점점 편지를 많이 받게 되었다. 유명해졌다는 말.
- 남들의 칭찬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법이 곧 시간통계였다. 1963년 2006시간 30분이라는 최고의 업무 기록을 세웠다고 자랑스레 결산했다. 매일 5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일한 셈이었다.
- 자아실현의 행복
16장 서글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
- 열정보다 이러한 방법론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 그에게 시간은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 그는 도구가 아닌, 창조의 가능성으로서의 시간을 사랑했다.